동생이랑 "광식이 동생 광태"를 봤습니다. 한창 스크린에서 하고 있던 시절부터 보고 싶던 영화였었는데, 개봉 했을 당시엔 볼만한 상황이 되지 못하던 시기라 어영부영 넘겨버렸었죠. 집에 내려온 김에 근처 비디오가게를 갔는데 운좋게도 하나가 남아 있었어요^^ 여담이지만, 거실에서 동생이랑 띵굴띵굴 딩굴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그자체로 참 큰 행복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래저래 이상하게 살아온 제게는 행복일 수도 있군요^^
아버지는 운동 가시고, 어머니는 목욕을 가시고, 집안에는 저와 동생 둘만. 거실의 불은 깜깜히 끄고, 티비의 볼륨을 크게 키우고, 영화에 집중했습니다. 한시간 반의 깜빡이던 영상들과 음악들과 대사들은 지나가고, 영화는 끝나도 내머리속에는 이것저것 생각들이 계속 떠돌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광태에 대해서는 이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나와는 완전히 반대의 타입이랄까요? 아마 다시 태어나도 광태랑 닮기에는 상당히 무리수가 있겠습니다^^. 제게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오로지 형 '광식이'뿐이었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광식이가 잘 되길 빌었지만, 결국 그는 모든것을 지나보내버리고 '세월이가면'을 부르는 것으로 그들의 인연을 종결짓고 맙니다. 한없이 답답하기만한 광식이를 내가 쉽게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모습에서 진하게 겹쳐보이는 내 모습때문입니다. 옹호할 생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는 확실히 소심하고, 말도 못하고, 서툽니다. 그가 가진 사랑과 애절함은 진실이었지만, 말하지 못했으니 알아채지 못했으니 무효입니다. 그럼에도 광식이 같은 사람은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태어나버린것'이란 것을 나도 너무 잘알기에 거친말로 그를 매도할 만큼 매정해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드는 또하나의 불만. 광식이가 그토록 짝사랑 했던 윤경씨!(이요원). 당신도 그의 마음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당신 쪽이 한발 더 내밀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좋아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란걸 그렇게 잘 아는 당신이 손을 조금만 뻗어 줄수도 있지 않았나요? 왜 그렇게 수동적이기만 했나요. (이러한 것은 광식이에 대한 제 끝없는 연민에서 나오는 한탄입니다^^;) 아아.. 하지만 역시 생각해보면 그녀는 여러번 손을 내밀었구나 싶기도 해요. 전해준 초콜릿 바구니를 생각해보면요. 물론 동생 광태의 실수 때문에 어긋나고 말았지만요. 그런 그녀의 손내밈에도 불구하고 엇갈린 것은, 인연이란 정말로 영화의 그 대사처럼 '그런 엇갈림마저도 포함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결국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눈치였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니 표현이 필요한데, 그럼에도 말하지 않은 쪽은 '둘 다' 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런 인연이였다 말해야겠습니다만.. 그렇지만 나는 끝까지 '원래 그런 인연이었다'라고 말하버리기가 꺼려집니다. 그냥 그렇게 말하기엔 내 모습도 거기에 겹쳐질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눈치가 없어서,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서 그렇게 인연이 끊어져버리는 일이 생길까봐 쉽게 인정하기 싫습니다. 물론 나는 광식이 보다는 좀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사람이고, 그보다는 훨씬 솔직한 쪽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내 표현 부족으로 잃어버릴 것들이 있다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내 눈치 부족으로 스쳐보내버릴 따뜻함이 있을까봐 두렵습니다.
사랑이란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 맞기는 합니다. 표현하지 못하고 담아놓은 사랑이란, 보석상자속에 놓인 보석같은 존재입니다. 보석상자가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것은 단지 무언가를 감싸고 있는 것 따름일 뿐인걸요. 중요한것은 보석인걸요. 내놓지 못하는 보석은 가치를 알릴길이 없습니다. 그런 보석을 감싸쥐고 있는 상자역시 더욱 소용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이 소중한 보석이 상대방에게 가치가 없는 것이면 어떡하나 하는 그 심장 부서지는 두려움은 상자를 여는 손을 늘 주저하게 만듭니다. 윤경씨가 건넸던 초콜릿 바구니같은, 작은 손을 내밀어주는 상대방을 만난다면야 천만다행이겠지만 물론 그건 그냥 역시 희망사항정도이겠습니다. (물론 카드에는 부디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주거나, 광태같은 필름끊기는 동생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실은 나는 이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느껴야 했을까요? 그것을 결정짓는 것 조차 실은 꽤나 힘든 일입니다. 그저 지금의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 윤경을 떠나보낸 광식이의 마음과 미묘하게 비슷하다는 것뿐이고, 그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이렇게 불안한 내 마음을 의연하게 만드는 일 뿐이겠지요. 어쩌면 이 의연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라도 말이예요.
시작한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툰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라면의 물을 조절하는 것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말입니다.
첫번째 것은 참을만 한데, 두번째 것은 괴롭군요.